세 가지 모습 — 몸, 가정, 군대

물댄동산교회는 몸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수행하실 일들을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 각자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따라서 충실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가정

물댄동산교회는 가정으로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형제자매들을 서로 돌보고 더욱 성숙하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군대

물댄동산교회는 군대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는 주님의 지상최대명령으로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물댄동산교회의 모습

평신도 교회

물댄동산교회는 평신도 교회입니다. ‘평신도’라는 말은 편의상 쓰는 표현일 뿐, 성경적이지 않은 말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평신도와 성직자로 나누어진 교회 체제가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이며 모두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사역은 한 사람의 사역자나 목사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형제가 은사를 발휘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물댄동산교회는 신약교회를 지향합니다. 신약교회는 위의 기초와 기능들이 올바르게 정립되고 수행될 때 드러나는 것으로, 신약성경에 그 본이 있습니다.

물댄동산교회가 신약교회로서 현재 시점에서 중시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직자가 없음

물댄동산교회에는 성직자가 없습니다. 신약교회의 인도자는 신학 공부를 통해 학위를 받음으로써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므로 그 분께 순종하며 본과 실전을 통해 배움으로써 세워집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거듭나면 교회가 가정으로서 그를 잘 양육하고 돌보며, 그는 그러한 가운데 성장한 형제들의 본을 통해 몸의 지체로서 봉사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증거하는 것을 배워 나갑니다. 이러한 일을 충성스럽게 해 나감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알게 되며, 하나님과의 교제와 영적 싸움의 경험을 통해 성장합니다.

만약 사람이 신학을 공부하고 학위를 취득하여 목사가 된다면 두 가지 문제를 가지게 되는데, 첫째는 성경의 본을 따르지 않고 임의로 세상적인 방법을 도입한 것이고, 둘째는 머리의 지식이 곧 영적 풍부함과 비례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교회가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주님의 충만이라는 사실에서 제기됩니다. 충만이라는 말은 더 이상 다른 것을 가미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이는 가장 중요한 인도자 양성의 문제를 포함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를 이끌어갈 인도자는 정상적인 교회생활을 통해 일어나며, 그 과정에서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교회에서 인도자가 양성되어야 하고 또한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주님의 교회가 충만하지 않다고 고백하는 셈입니다. 이는 성경 말씀을 믿는 태도의 문제이기에 심각합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모든 좋은 것’은 흔히 해석하듯 단지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했기에 주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었던 것을 보십시오. 주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나누라 하실 때는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영적인 것, 주님의 고귀한 것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의 가르침과 배움은 단지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그것을 지키게 하는 데 있습니다. 진실로 주님이 말씀하신 바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지킬 것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교회 생활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며, 인간의 조직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주님의 충만인 교회를 통해서만 세워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현실적으로 수많은 병폐를 일으키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을 꾸준히 증거하고 실질적인 봉사의 삶을 살아 말씀이 자신의 영혼에 십자가로 체득되는 과정을 많이 겪은 후에야,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구덩이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셨으며 사도들도 그리하였습니다. 이는 주님의 길과 바리새인의 길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때문에 주님의 가르치심은 권세 있는 자와 같았고 서기관들과는 달랐습니다.

우리가 성직 제도를 미워하는 것은 주님께서도 그것을 미워하시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이 모든 ‘평신도’들이 평생토록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주님께서 그들의 온전한 헌신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셨는데, 그것은 영혼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삶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희생이 단지 우리가 하는 일에 도움을 받기 위함이라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쏟아부으셨을 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모든 특권이 우리 삶에 최대로 구현되기를 원하셨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왕 같은 제사장들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특권과 직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고 그 분을 충성스럽게 따르면 우리 주위의 영혼들이 주님을 믿게 될 것이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생기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져야 할 마땅한 비전은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교회의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그렇게 목자와 장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주님 앞에 섰을 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그러했듯 주님께서 주신 것을 그대로 싸매어 두고 인생을 지냈다고 하는 것은 주님을 슬프게 하는 일입니다.

은혜를 누림

주님의 사람들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삽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속을 완성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우리가 그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것은 주님 앞에서의 겸손함으로 이루어집니다. 겸손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지혜이시므로, 우리가 전적으로 그 분을 의지할 때 대적이 당해낼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주십니다. 겸손함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것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지속적으로 당부하신 것은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비로소 끝이 오리라고 하신 말씀으로, 주님은 교회가 이 땅 위에 있는 목적이 복음 전파에 있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교회가 가정으로서, 몸으로서 봉사와 성도 섬기기를 하는 것도 군대로서의 교회가 강성하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나 서로 교제하는 것이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새 하늘에 이르면 온전한 교제와 성화가 순식간에 영원히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이 땅에 아직 남겨 두신 이유는 복음 전파에 있습니다. 교회가 올바르게 기능하고 있다면 꾸준히 복음을 증거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겸손한 자에게 주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우리가 전할 복음 메시지의 중요한 부분은 은혜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율법 아래에서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한국 종교계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율법에서 벗어나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주님을 영으로 섬김으로써 율법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욱 높은 차원의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말씀은 그 권위에 있어 동등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위해 쓰여졌으며, 우리로 하여금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구비시킵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한다거나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식의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하여 무율법주의자처럼 절제 없는 삶을 사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말씀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여진 것으로, 그 말씀을 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성령의 조명으로 받고 순종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떤 형제가 무절제함으로 율법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의의 기준을 범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하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율법의 선한 것을 거스른다면 이는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나, 죄를 범한 자는 율법으로 책망합니다.

현재 시점에서 교회가 조심해야 할 죄는 미디어를 통해 가정과 개개인에게까지 들어온 음란의 영입니다. 텔레비전과 비디오, 인터넷을 통해 들어오는 더러운 영을 제어하지 않으면 교회의 길이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개개인의 내면적인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갈 때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쓴 패를 달았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성결함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각 사람은 성령께서 비추어 주실 때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주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말세에 이르러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이들의 교회가 배도하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교훈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이 그것에 넘어감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로마 카톨릭의 세력은 점점 흥왕해 가고 있으며, 세계 여러 종교들과 연합해 가는 시대에 있습니다.

주님의 교훈과 다른 이방의 교훈이 갈라지는 지점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자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핵심 교훈은 혼생명, 곧 자아를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방 종교는 옛적 사단이 하와에게 했던 유혹, 곧 ‘네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말을 점점 더 받아들이고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자아를 사랑하라, 자아를 계발하라는 구호와 함께, 이방 사상에 뿌리를 둔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근거한 이론들을 통해 교회를 공격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는 구약에서 말하는 접신의 또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세에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데 있어, 성경이 우리의 영과 혼에 관한 모든 문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한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그 분의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은혜를 누리고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헌금시간이 없음

물댄동산교회의 한 가지 특징은 헌금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한국 교회의 슬픈 현실 때문입니다. 헌금에 있어 주님의 가르침은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헌금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주님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골방의 기도와 왼손이 모르게 하는 구제를 해야 합니다. 헌금은 공과금을 내는 것과 가난한 성도를 돕고 주님의 나라를 펼치는 데 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을 믿습니다.